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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락재 통신-51:한 시조시인의 시조집을 선물 받으며

sosoart 2007. 4. 3. 21:39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여인(?) 아내와 딸이 부산 해운대의 야경을 배경으로한 콘도의

침실 창에서

 

 

통영 선착장에서 한산도 가는 길목의 섬 모습

 

 유람선의 난간에 부딫치는 물결

 

<동락재 통신-51: 한 시조시인의 시조집을 선물 받으며>               <2006. 3. 28>


 

아침 10시나 되어 전화 소리에 잠이 깨어 일어났다.

아내와 딸이 아비의 게으름을 경계하고자 단속하는 아침 점호인 것이다.


어제 밤은 외국 공예잡지의 도예 작품을 보며, 援用할 작품이 있나? 일종의 아

이디어 생산용 자료조사를 하다가 그만 눈이 스르르 감겨 침대에 벌러덩 누워

잠이 들었다.  아마도 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으니, 근래에 아주 보기 드

물게 초저녁에 잠이 든 것이다.


보통은 새벽 1시30분에서 3시에 잠드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어 밤 12시는 초저

녁에 불과하다.

그런데, 습관처럼 아침 6시30분경 잠이 깨었다가, “에라! 조금 더 누워있자”며

도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가, 아침 10시가 되도록 잠이 들었다.


딸아이가 “아빠는 어제 몇 시에 잠이 들었는데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는다”고,

끼니를 제 때에 하지 않는다고 잔소리다.   제 엄마를 닮았는지, 아내와 딸 둘이

서 모처럼 만의 게으름에 달달 볶는다.


세수를 하고, 어제 씻어서 불려놓은 쌀의 물 양이 적당한 가? 확인하고 전기 

밥솥에 전기를 꼽았다.

국은 아내가 끓여 놓고 간 쇠꼬리를 푹 고와서 냉동실에 얼려 놓은 국물을 가스

불에 올려놓고, 반찬은 이것저것 주섬주섬 식탁에 올려놓고 아침 식사를 준비

한다.


대부분 혼자 있을 때에는 아침 겸 점심을 11시쯤, 저녁은 6시에서 7시쯤 먹는

다.

혼자서 있기에 끼니때를 1번 줄이게 된 것이 습관이 되어 두 끼 만을 먹는다.

작업을 하다가 중단하고, 밥을 손수 차려 먹는 것이 여간 성가시고 귀찮은 일이

아니어서, 어찌 하다 보니 그렇게 습관이 되었다.


가끔 속이 허할 때는 귀찮지만 고기를 구워 먹는다.  아내와 함께 있을 때에는

일주일에 적어도 4-5회 정도 고기를 먹어 주어야 뱃속에서 보채지를 않는데,

혼자 있을 적에는  꼼지락 거리기 싫고, 식사 준비에 작업의 맥이 끊기기 싫어

밥 대신 차나 술을  대신하여 마시곤 한다.

실은 고기를 좋아한다기 보다, 술을 마시려니 안주가 있어야 하기에 핑개겸에

고기를 먹는다는 것이 옳다고 하겠다.  술을 마신다면 아내가 곱지 않은 눈으로

보니, 고기를 먹으며 자연스럽게 “느끼하니 술을 한 잔 해야 겠다”며 술을 마시

면 차마 말리지는 않는다.


하기야 말린다고 듣는 인사가 아니니 속으로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술을 마시

는 ”지긋지긋한 화상”이라고 욕을 하겠지만......


이제는 소화의 능력도 젊을 때 같지 않아, 고기와 술은 가급적 최소한으로 줄이

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매년  서너 번은 “술病”이 나니 좀 자제를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실천을 못하니 가족들에게 미안하기는 하다.  그렇다고 술주정을 한다

는 것은 아니다.  나의 단어에는 술주정은 없다.


내 앞에서 누구든 술주정하는 꼴은 못 보는 성격이다.  젊었을 적엔 내 앞에서

친구 녀석이 술주정하다가  반은 죽여 놓은 적이 있다.

나는 연령의 고하를 막론하고 사내놈들이 술을 핑개로 내 앞에서 주정을 하면

그야말로 개 패듯 반 죽여 버린다. 그런 일로 곤혹을 치루긴 했지만.....

말이 또 빗나갔다.


그런데,  겨울에는 텃밭에서 나는 채소가 없기에 이런 시골에서는 더구나 싱싱

한 채소를 먹기가 쉽지가 않다.

혼자 있는 날이 많으니, 홍천 읍내로 나가려면 10여분 차를 타고 나가서, 농협

의 마트에서 이것저것 장을 봐야 하는 데, 그것도 혼자 있으면 나가기가 싫고

게을러지니 어쩔 수가 없다.

서울의 대형마트에 가면 이곳 보다 야채나 과일이 싱싱할뿐더러, 값도 싼데 이

아주 조그만 읍의 마트란 것이 대형마트라 해도 서울의 일반 슈퍼 정도 밖에 되

지 않으니, 싱싱한 과일과 채소는 거의 서울에서 사가지고 온다.


여기서는 주로 고기와 두부 종류를 산다.

수입이 아닌 토종 한우와 국산 돼지고기는 믿을만하고 두부 또한 홍천에서 생

산되는 콩으로 만든 두부는 매우 맛이 있다. 


반찬거리를 한꺼번에 많이 사와서 냉장고나 김치냉장고에 넣긴 하지만, 어떤

것을 사왔는지, 그 자체를 잃어버리는 수가 많고, 어떤 때에는 그냥 냉장고에서

상해버려 먹지도 못하고 버리는 수도 많으니, 이 건망증을 어이 하랴?


건망증 부문에서는 아내와 나는 “서로 누가 이기나?”  경쟁하듯이, “저쪽에서

무얼 가지러 금방 이쪽에 와놓고서는, 내가 지금 왜 여기 왔지?” 하며 서로에게

묻는 때가 많으니 이 노릇을 누가 말리겠나?


어찌됐던, 오늘의 아침을 해결하고, 벽걸이 작품의 구상을 마치기 위해 탁자에

디자인 해 놓은 단청 문양의 木板을 다시금 살피며, 오디오의 CD를 빼고 새로

운 CD를 넣었다.


제목은 “눈물의 Tocata"라고 번안이 되어있지만 경쾌한 연주음악으로 오늘을

시작한다.   

오랜만에 듣는 "Tocata" 그리고 계속되는 Andy Williams의 “And I love you so"  

좋아하던 음악들이 오늘을 여는 기분을 좋게 해준다.


“그대를 정말, 참 많이 사랑해요” 노래 말처럼 내가 누구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나? 생각을 더듬어 보며........

오늘 새로 온 소식이나 편지가 있나 살펴 보기위해 메일을 점검해 본다.


별다른 소식은 없고, 카페에서 온 회원 전체메일은 “참 꾸준히도 보낸다”는 생

각을 해 본다.

일상생활의 메일이란 것 중에서 과연 나에게 꼭 필요한 메일은 몇 개나 될까?

생각을 해보게 된다.


情報란 것이 그야말로 첫 번째로는 “사물의 내용이나 형편에 관한 소식이나 자

료: informaiton” 또 그 두 번째로는 “군사·국가 안보 등의 분야에서, 어떤 방면의

정황이나 그에 관한 지식 또는 보고: intelligence”라고 정의되어 있지만 과학기

술분야에서 종사하며,  그 두 가지를 다 다루었던 나로서는 정보가 나에게 유용

하지 않은 것은 쓰레기나 잡음(noise)으로 처리되어 전혀 필요 없는 것 아니면

버리는 비용마저도 아까운 것이 되는 것인 즉, 인터넷에서의 그 많은 정보들이

나에게 다 필요한 것이라면, 자신의 머릿속에 다 수용하거나 소화 또는 활용 해

보지도 못하고 그 노도와도 같이 밀려와 집채만한 파도처럼 덮치는, 정보의 삼

각파도에 밀려 죽어버린다 해도 표현의 부족함이 없는 것이리라.


그러기에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대량정보의 유통매체인 신문, TV, 광고

나 Internet을 통한 가상공간에서,  싸이버 족들에 의해 理性과 事實과 학문적이

나 이론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쓰레기 정보들에 의해 많은 정신과 시간을 낭비

하게 되는 것 역시, “인터넷 강국”이라고 “自畵自讚”하는 정부의 無腦兒 골빈당

인사들이나 장사꾼들의 지껄임에 덩달아 놀아나는, 감성만을 중시하는 일부 사

람들의 노리개 감에 지나지 않는 현상이 걱정스러울 뿐이다.


자고로 인터넷이란 미국의 과학자들이 연구에 필요한 과학정보의 공유를 위하

여 개발된 컴퓨터를 통한 정보검색의 도구였는데, 어찌 된 연유인지, 이 나라에

선 과학적, 생산적 정보의 활용에 관한 목적 보다는 온갖 잡스런 짓거리가 위주

인 도구로 전락되어서 失笑를 금할 수가 없다.


오죽하면 본인과 같은 “科學技術情報檢索專門家(Informaiton Specilist; Expert)”

이기도 한 사람들이 소위 인터넷 카페니, 블로그니, 플래닛이니, 하는 세상에서

는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이 된단 말인가?


요즈음은 더구나, 나이를 먹은 게 마치 무슨 흉이나 죄가 되는 것처럼, 나이 먹

은 소위 중년층이나 노년층에 편입되어져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감성만을 생명

처럼 여기는 일부 젊은 아이들(물론 유아기에서 장년층 까지를 나는 칭하고 싶

다)에게 뒤 질세라, 싸이버 세상에서 노는 꼴들이란 차마 눈을 뜨고는 보기 싫

기도 하지만, 점점 “漸入佳境”의 꼴불견으로 치닫는 데에는 아연할 수밖에 없

다.


무릇 사람이란 나이를 먹은 만큼 얼굴도 늙게 마련이고 정신도 그만큼 연륜과

경륜이 쌓이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늙어 쭈그러지는 얼굴을 보톡슨지 보리알인지 멀쩡한 제 살에 주사를 놓고, 파

라핀을 속에 쳐 바르면 낯짝이 젊어지나?  그리고 멀쩡한 눈두덩엔 왠 쌍거플

수술인가?

일부,  의사도 아닌 의사놈들의 장삿 속에 전국민의 눈살에 쌍거플화 하기로 작

정을 한 것은 알지만, 의사란게 무엇인가?

질병으로 인한 몸과 마음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고 예방하는 것이 의사인데,

왜 멀쩡한 인간의 살을 찢고 자르고 붙이고 지랄발광을 한다는 말인가?


의식과 양식있는 의사들의 개탄하는 한숨 소리가 땅을 꺼뜨리고 있는 작금의

세상이다.


정치하는 놈들은 그렇다 치지만, 이제는 의사란 이름을 걸고 성형을 한다는 성

형외과 의사들을 나는 의사라고 부르지 않는다.  물론 그렇지 않은 성형외과 의

사들도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듯이 일부 돈에 환장한 녀석들이 어리석은 골빈

사람들을 惑世誣民하며 치부에 이용하는 놈들이 문제가 아닌가?

외과의사를 하려는 의사 지망생이 턱없이 모자른다는 현상이 요즈음의 일이 아

닌, 벌써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히포크라테스가 복장 터져 돌아버릴 게다.

그러면서 그렇게 제 스스로 제 몸에 칼자국을 내달라고  돈을 갖다 바치는 “거

시기”들이 “양극화 현상”이라느니 “돈을 가진 자나 배운 자들”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저 제 배운 만큼의 개미 똥구멍만한 알량한 지식과 머리로 욕하고, 떼

를 지어 “패거리 판”만 만들어 가고 있지 않은가?


이 나라를 우리의 선배들과 우리들이 어떻게 一心團結하여 죽을 고생을 하고,

오로지 미래와 정신 올곧게 박힌 후손들을 위해 만들었는데, 어떤 시러배 놈들

과 그 패거리들이 이렇게 나라와 民意를 분열시키고 망하게 하여 가는지 정말

로 통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무슨 거창한 정치가도, 한쪽에 치우친 이념에 젖은 학자도 아니며, 정부의

대단한 벼슬을 한 공무원도 아니고, 여든 야든 어느 정당원도 아니지만, 이런

저런 꼴들이 보기 싫어 공직을 내 팽개치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강원도 깡촌

의 시골 구석에 자리잡고, 멀리서 벌어지는 세상의 일을 바라보면 아무리 요지

경 세상이라 하지만, 참! 해도 정말 너무 한다.


한 편으로는 이 산촌의 동락재에서 기거하는 시간들이 남 부럽지 않은 “맑고 향

기로운 세상”에서 “신선놀음”을 하고 있으니, 신선과 生佛이 따로 없다고 스스

로를 위안하며 살고 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내 일이 아닌 이야기는 쓰지 않으려 한다.


이야기를 꺼내면 자꾸 거친 욕만 내 뱉어지고, 내 머리와 얼굴이 더러워 지니,

나도 내 스스로 감성을 자제하고 나의 이성을 차분히 정리해야겠다.


아! 바로 조금 전에 우체부가 등기우편을 배달하러 왔었다.

요즈음은 이런 산골에서 등기를 받을 때에도, 옛날처럼 도장이나 손도장을 찍

지 않게 되어 隔世之感을 느낀다.


우편물 봉투에 붙여 있는 바 코드(Bar-code)를 우체부가 스캐너로 확인하고,

수신자가 전자펜으로 싸인 하면 끝이다.  세상 참 좋아졌다.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며칠 전 나의 블로그를 방문한 어떤 분이 계시기에,

그 블로그를 答訪?하면서 몇 자 댓글로 인사말을 끌적 거렸었는데,  그 분이 내

가 가입한 카페에도 가입했던 분이었던 것 같다.


헌데, 자신의 시조집을 보내겠다며 메일로 주소를 물어 왔기에, 세상이 하도 상

식적이지 않은 세상이어서 선뜻, 함부로 주소를 가르쳐 주기는 꺼름직 하여 망

설이다 알려 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는 이 건망증의 인생이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오늘 그 소중한 그의 작품

“山 시조집 <山窓>을 등기우편으로 받았다.   


아직 그 내용을 읽어 보진 못했으나 작가의 친필로 증정의 글을 썼고, 함께 메

모도 보내 주셔서,  감사하게 그 분의 마음과 삶의 흔적인 시집을 간직하려 한

다.

무릇, 책이나 작품이란 그 작가의 모든 정신과 심혼을 기울여 글을 쓴 삶과 생

활, 그리고 자기만의 정신세계의 기록이기에 책을 보면 그 작가를 대하듯 정중

하게 대하는 마음이다.


본인은 또한 현직에서 도서관장 직도 수행했기에 책과 책에 담겨져 있는 내용

의 귀중함을 누구보다도 더 깊게 인식을 하고 있고 중요성을 잘 안다고 생각을

한다.


책의 내용이 순수, 혹은 응용과학이나 사회과학 또는 인문과학, 문학, 예술 등

어떤 분야나 장르에 관계없이 그 책은 곧 작가를 대변하는 것이기에 “책이란 곧

저자” 라는 생각을 한다.


자신의 작품 시조집을 산촌의 밑둥에 살고 있는 일개 촌부에게 정성스레 보내

주신 時調作家 “한상철”님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이미 그분의 책이 시중에 나와 있고, 또한 작가의 Profile이 공개되어 있으므로

그분의 소개를 간단히 적고자 한다.


194X년 경북 고령에서 출생

국민은행 지점장 역임

199X년 퇴직

현재.

서울특별시 산악연맹 상임이사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산악회 회원


그의 홍천군 소재 군립공원 공작산을 읊은 시조를 한 수 옮겨 놓고자 한다.

이 공작산은 동락재에서 10분이면 공작산의 중턱까지 차가 오를 수 있다.

우연히 찻길을 따라 오르다보니 알게 된 길로서, 평일에도 가벼운 등산을 위해

관광 산악인들이 많이 오는 곳이다.

관광 산악인이란 본인이 전문 산악인과 차별하기 위해 만든 용어이다.


<孔雀의 妙技> 


수타(壽陀)골 숨은 공작 꾼에 놀라 푸드덕

청홍(靑紅)깃 곧추서고 발걸음도 의연타만

태극기 펼친 꽁무니 부채춤은 더멋져

                                 - 한상철 山 시조집 II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