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봉하고 달라요. 깔보지 마세요"라며 쇠파이프를 꼽고 2봉은 뻐기고 있더라.
이렇게 산비탈로 떨어지지 말라고 줄을 쳐놓기도 하며 팔봉산 구조 제 2지점이란 안내판이 서있다.
부채도사처럼 이쪽으로 가면 2봉, 저쪽으로 가면 3봉. 어디로 갈가냐? 며 으시대며 이정표가 도도히 서있다.
당연히 장유유서. 2봉으로 가야하지 않겠나?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며 2봉으로 오른다.
올라서자 마자 3봉이 "내가 더 멋있지?"하며 자태를 뽐낸다. 녀석 이놈보다 잘 생기긴 잘 생겼네!
여기서도 아래를 내려다 보니 1봉과 그다지 차이는 없다.
그런데 올라서지 마자 왠 집이 하나 서있다. 상여를 넣는 곳인가? 하긴 상여를 이렇게 힘들게 높은 곳에는 넣지 않았을 테고..... 무당집인가? 무당이 무슨 산타는 재주꾼도 아니고 시도 때도 없이 이 봉우리에 오르내리지는 않을 테고.......
"삼부인당" 이란다. 해서 어느 복많은 양반이 부인을 셋을 거느리고 살다가 그 부인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신당을 지었나 했더니 그것도 아녀.
아쨋던 2봉이라고 표석을 세운 곳에서 사진 한 장을 박었다.
이 삼부인당 넘어로 삘줌하게 지붕만 보이는 것은 또 무어란 말인가?
여기에 삼부인당의 유래가 써있는데, 아무래도 관광객을 꼬시기 위해 급조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옛날 이 팔봉산을 올랐을때 이 당집을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유래가 너무 간단하고 뿌리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야지.
팔봉산 산신령이며 칠성칠군이 무언지 당최 모르겠지만 무당이 상주하는 곳은 절대 아녀.
먼 무당이 그리 기운이 좋아서 매일 이 산을 오르내린다는 말인가? 그리고 이 좁은 곳에서 무신 동네 사람들이 굿을 하고 안녕을 빌었다는 말인가?
하긴 지금 집을 지어도 훗날 500년 후에는 그것도 유적이 되는겨. 이것도 100년 후면 유물, 유적이 되지 않겠나?
하나 우스운 얘기가 근 40년 전 용문산에 등산을 가려면 용문에서 합승(지금은 봉고차 정도의 크기)차에 거짓말 안보태고 등산객이 30명 가까이 배낭 등 짐을 매고 짐짝보다 더하게 실려서 다닌 적이 있다.
그 당시 용문사를 지나 그 위 계곡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면 밤늦게 짐승 울음소리가 나곤 했는데, 늑대나 들개 종류가 아닌가 짐작을 했다. 정상에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서 정상까지 등산을 할 수는 없었는데, 용문사의 은행나무가 500년이 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1,000년이나 된다고 해서 우연한 기회에 내가 산림청 관계간부에게 실제로 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측정이나 다른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대측정을 한 것이냐?고 물으니 대답을 회피하며 얼버무리고 말더라.
김일성이가 신으로 대우받듯이 거짓말도 거븓하다 보면 사실이 되는 나라이고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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