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다헌정담(茶軒情譚)-일상의 談論

장미와 솟대- 4

sosoart 2008. 6. 12. 23:33

 

 

다시금 내 얼굴이 또 나왔네.  우리 주인마님이 우리 집의 솟대 중에서는 나하고 가장 오랜 정이 들었다고 할 수 있어.  정식으로 학교에서 목공예디자인을 배우기 전에 나를 만든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말이야.

 

 

나의 발 바로 아래 길 옆으로는  자작나무로 만든 울타리가 처져있고 그 옆에는 지금은 이렇게 노란 꽃을 피운 도마도 나무가 한 20개 정도 있거든.  그런데 오늘 아마 우리 주인님께서 장미꽃이 피기 시작하니까 그 모습을 담아 두려고 하다가 얘 얼굴도 보니 함께 담아두려고 찍긴 찍었나 본데, 정성을 안들였나봐.  막 찍은거 같애.  초점도 안 맞았잖아.  한 잔 하셨나?

그러니까 얘 얼굴이 이 모양이지.  얘도 어지간히 심통이 난 모양이야.  제 얼굴 이렇게 찍었다고.

야! 그렇다고 성질 내면 뭐하니~?  네가 참아.   참는 놈이 이기는 법이야. 

늙은 주인님 하고 싸워봤자 너만 속 터져.  나이 젊은 우리가 참아야지.

 

 

얘는 그래도 얼굴이 예쁘니까 흐릿하게 찍어도 예쁘긴 예쁘네.   얼굴보다 색깔이 더 예쁘네.  하긴 모든 것이 色을 잘 써야 예쁘게 보이나봐.  안그래?  그렇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말어.

 

 

예쁜 건 예쁜거야.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고 하잖아......

 

 

나는 그런 꽃 밭에서 항상 놀고 있잖아.  해가 가고 달이 바뀌어도.  그림 좋지?

 

 

근데 이 찔레꽃도 장미꽃 만만치 않다.....뭐!   얘는 향기가 은은한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

향수를 뿌려도 왜 천한 냄새가 나는 게 있잖아?  그런데 얘는 그 냄새가 그윽하고 은은한 것이 마치 제 모양처럼 순박하고 자세히 보면 아주 예뻐.  장미보다도 더 예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하얀색이란 건 어느 색깔이든 칠할 수 있는거 아냐?  말하자면 백지에 그림을 그리듯 무한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여백이 있다는 것.  그만큼 가능성도 끝이 없다는 것 아니겠어?

 

 

또 장미와 함께 이렇게 같이 있는 것을 보면 둘다 다 예뻐보이지?  그것이 바로 공존의 미학이라는 거겠지.  "共存"이라고 하니까 조병화님의 시 "공존의 이유"가 떠오르네.    나도 우리 주인님 어쩌구 저쩌구 흉보면서 많이 닮아가나봐.  우리 주인님이 조병화님의 시를 아주 좋아하시거든.

 

 

 

얘는 3형제 오리지널 솟대 멤버야.  그런데 다른 아이들이 나무가 썩어서 버려지게 되엇는데, 얘는 재래종 소나무로 만든 것이 되어서 아주 단단하고 오래 견뎌.

 

 

찔레꽃을 가까이 찍은 거야.

 

 

어떻게 보면 배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벚꽃 처럼 생기기도 했지?

 

 

 

장미는 요염해.  어찌보면 좀 천박한 편에 속하기도 하지?   그런 면에서는 찔레꽃이 꾸밈없이 순박하고 더 예뻐보여.

 

 

길 옆, 자작나무 울타리에 핀 찔레꽃과 장미꽃인데 이제 며칠 있으면 이 넝쿨장미가 활짝 만개할거야.

그러면 더 눈에 환하게 띄어 예쁘게 보일거야.

 

 

저 기둥에 의지하고 있는 것은 도마도야.  지금부터 도마도 꽃이 피기 시작하니까 이제 6월말이 되면 도마도를 먹을 수 있을거야.  인간들은 참 좋을거야.   이렇게 제철에 나는 과일이나 채소를 가꾸어 맛있고 싱싱하게 먹을 수 있다니......

 

 

얘는 매일 날아가려고, 그야말로 매일 서울로 도망치려고 보따리 싸놓은 촌색씨같아.....  잘지도 못하면서 맨날 이렇게 펄떡 펄떡 날개짓만 하고 있어.

 

 

부리만 길로 얼굴도 못생긴 것이 꼴갑을 떨어요.  헛바람만 잔뜩들어가지고 이런 촌구석에서는 살기 싫다고 투정만 부린다니까.

 

 

그래도 몸통과 깃털은 호화스런 오방색이 요란하네. 토종 "El condo pasa" 인가봐.  얘는 별명이 El condo pasa 라고 했잖아.  갈 놈은 언젠가는 가게 마련이니까 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훨훨 철새 날아가듯이 도망을 갈거야.   가련한 것.

 

 

야! 찔레꽃도 이렇게 울타리에 걸쳐서 많이 피어나니 보기에 참 좋다. 역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좋긴 좋아보이네.

 

 

저 장미도 고와 보이기는 하지만 찔레처럼 순결하거나 은은한 아름다움, 그러니까 빛나되 눈부시지않은 고움은 없는 것 같지않아?

 

 

찔레와 장미.  어떤 시의 시제(詩題)같기도 하네.  언젠가 이 제목으로 시 한 번 써 보고 싶기도 해.

 

나는 매일을 이렇게 울타리의 한쪽 높이 올라서서 길가를 바라보며 오랜 시간을 견디다 보니 어떤 삶에의 깨달음에 도달하고 싶은 욕망을 가져.  비록 솟대의 몸이지만...

 

"정표년"의  <깨달음>이란 시를  심산유곡에 거처하는 스님의 말씀같은 말들로 생각이 되어 가끔은 읽곤 하지.

 

마침내 우리가 지금  

이자리에 섰다 하나

 

그 눈길  관심들을

따돌릴 수 있을 진가

 

오히려 군중속에서

모를때가 좋았지.

 

모든게 다 그렇지

알고나면 허전하지

 

열심히 안간힘 쓰고

이루려고 하다보면

 

어느날 별것도 아닌

그 비밀이 깨지는 걸.

 

우리 주인 마님이 그래.   어쩌다가 내 이야기인 "솟대 이야기"를 시작하다가 끝을 안낼 수도 없어서 이렇게 글을 올리고는 있어도 지루하고 재미없어 하는 분들이 계실터인데, 카페에 가입을 하고 오랜동안 좋은 음악과 좋은 정보만 얻어가기만 해서 밥값이나 한다고 올린 글이 카페의 가족들께 눈썹만 찌프리게 하는 일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그래서 내가 그랬어.   주인마님의 충정을 이해해 주실터인즉 너무 심려말고 잘 마무리나 하라고.

"있을 때 잘 하란 얘기지" 뭐

 

그럼 내일 또 뵈요.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