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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이향남 개인전 2012. 11. 28 - 12. 3 인사아트센터(T.02-736-1020)

sosoart 2012. 11. 19. 16:39

이향남 개인전 2012. 11. 28 - 12. 3 인사아트센터(T.02-736-1020)

이향남 개인전

인류학적 답사기-부유하는 삶

작가는 한번 떠나면 보통 한 달에서 한 달 반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는 여행 중에 트래킹과 버스, 자전거, 트럭 여행을 하며 험난한 장소에 거주한다. 동상이나 물집은 입에 올릴만한 통증이 아닌 여행이었다면, 작가가 얼마나 강인한 사람인지, 그곳이 얼마나 매혹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글 : 양효실(미학박사)

부유하는삶-상공에서의 킬리만자로, Oil on canvas, 227×181.5, 2012

다른 삶을 위한 여정의 보고서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으로부터 벗어나 낯선 곳을 여행하면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다시 돌아오는 관행. 여행은 휴식, 휴지이고, 고되고 무의미한 노동과 냉혹한 생산의 명령으로부터의 일탈이다. 일생 한 번도 여행을 하지 않고 제자리에 머무르며 문학과 예술을 곁에 두고 삶을 창조한 이들은 노동의 피로, 라는 말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여행이 노동과 여가, 생산과 소비의 이분법 안에서 일어난다면 여행은 삶을 소외시키는 또 하나의 제도이고 노동일 지 모른다. 여행은 노동과 생산의 '밖'을 꿈꾸는 근대인들을 소비자로 만들고 세계를 판매가능한 소비상품으로 만드는 자본주의적 회로 안에서 떠남의 환상을 보존한다. 여행은 소비의 바깥이 부재한 산업사회에서 자본이 제공하는 바깥의 환상이고 낯선 곳의 삶을 이미지화하고 대상화하는 중에 '낯선 곳', '먼 곳'이라는 환상을 유지하고 판매한다. 많은 이들이 지금·이곳을 여행지로 만들 가능성, 삶을 예술로 변환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은 일상과 여행의 이분법을 전복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중에 나온 것이다.

부유하는삶-잠베지강의 노을, Oil,Gel Stone,color spray on canvas, 130×130cm, 2012

이향남 작가의 이번 전시 <인류학적 답사기-부유하는 삶>은 오랜 세월 여행자로서 세계 곳곳을 누볐던 작가의 최근 4,5년간의 여행을 기록한 인류학적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 중남미, 중국, 유럽, 혹은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의 애청자라면 떠오를 이름들, 가령 붉은 사막, 잠베지강, 오카방고 델타, 킬리만자로, 황산, 이스터섬, 소금산 살라미스, 우유니 소금사막, 마추픽추, 몽셸 미셸 등등을 작가는 손금 들여다보듯이 훤히 꿰뚫고 기억하는 사람이다. 작가는 한번 떠나면 보통 한 달에서 한 달 반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는 여행 중에 트래킹과 버스, 자전거, 트럭 여행을 하며 험난한 장소에 거주한다. 갈비뼈에 금이 가도 멈출 수 없었던 여행, 동상이나 물집은 입에 올릴만한 통증이 아닌 여행이었다면, 작가가 얼마나 강인한 사람인지, 그곳이 얼마나 매혹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원주민들도 거의 살지 않는 폐허나 유적지, 혹은 사막과 같은 오지를 직접 여행지로 선정하고, 남자'도' 버티기 힘든 여정을 긴 시간 감행하는 작가의 '고행'은 인간의 자취가 사라진 장소만이 허락하는 만남, 사유를 위한 것이었다고 보인다. 문명의 도구나 기계가 멈추는 곳에서 작가는 걸었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길 아닌 길에 맞춰 순례자나 유목민이 되는 중에 작가는 인간의 바깥 세상으로 들어갈 '통행증'을 얻은 것이리라. 장소를 정복하고 길들이고 인간화하는 중에 출현한 근대적 풍경은 동시에 순례자와 유목민으로서의 인간의 운명도 제거했다. 작가가 가급적 오지, 말하자면 문명의 탐욕이 통치하지 않는 풍경에 일시적 체류를 기탁하는 것은 인간 이전의 인간, 세상에 ‘감각적으로’ 거주한 인간으로의 회귀를 욕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유하는삶-나미비아의 사막 산, Oil,Gel Stone,color spray on canvas, 130×130, 2012

너른 평야나 사막, 들판, 험준한 산을 하염없이 걷는 고된 '노동'은 근대적 시간의 지배 밖에서 시간을 사유하는 데 바쳐진다. 불연속적인 숫자로 추상화된 시간 대신에 연속적인 흐름, 몸을 타고 흐르는 시간이 도래한다. 기(氣), 흐름(flux), 에너지와 다를 바 없는 시간 속에서 순례자의 삶은 자연스럽게 불연속적인 개체성을 상실하게 된다. 시간은 느린 보폭으로 삶을 관통해서 너와 나를 하나로 이어 전체를 만드는 중에 흐른다. 시간은 장소와 분리불가능한 전체이고, 풍경과 함께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순례자는 내딛는 발바닥 사이로 올라오는 잊혀진 이야기들에 귀기울일 것이다. 오래 전 그곳에 살았던, 지금은 유적이나 흔적으로만 확인되는 삶의 살결이나 숨결은 바람에 남았을 것이다. 잊혀진 장소, 거주에 부적합한 장소, 아늑함이나 풍요가 사라진 장소는 지금은 없는 삶, 안 보여도 있는 삶, 아니 안 보이기에 존재하는 삶을 기억하기 위한 장소이다. 걷기는 오래 전 인류가 그랬듯이 시간을 넓게 확장해서 내 것이 아닌 것들을 위한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다. 걷기는 만남에 겸손한 자들의 의식(儀式)이다. 걷는 자는 생각하고 계산하고 인식하는 머리를 잃는 중에 유한한 몸의 한계를 환대하고, 그럼으로써 삶의 우연성, 일시성을 받아들이고, 그럼으로써 죽음을 환대할 기회를 만난다.

부유하는삶-황산의 여명, Oil,Gel Stone,color spray on canvas, 162×112, 2012

물리적 고통은 명증한 감각의 사실성을 통해서만 확인되는 삶의 유한성을 성찰할 기회를 선물한다. 육탈된 뼈들이 이리저리 뒹구는 풍경과 만나는 일. 이 글을 쓰는 필자는 지금 보고 있는 작가의 캔버스 풍경 어디 쯤엔가 앉아 있거나 걷고 있거나 누워있었을 작가가 이토록 외롭고 황량하고 쓸쓸한 곳에서 어떤 경이, 겸손, 평온을 느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그녀가 보고 느끼고 간직했을 비인간적 진실은 전해져온다고 말하겠다. 문명은 이해가능한(intelligible) 것만을 의미화할 수 있는 자신의 무능을 실토하기엔 너무 수치심을 모른다. 근대적 인간의 가면을 벗어놓고 이해할 수 없으므로 느끼고 전염되는 것 외엔 할 게 없는 풍경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인간'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죽어가는 존재이고 죽는다는 사실을 곁에 두고 살아갈 때 비로소 삶을 긍정할 수 있다. 삶의 일시성을 만나는 중에 인간은 자유로워지고, 견고한 자기애의 경계를 벗어나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일찍이 종교적 수행은 늘 육체의 고행 중에 일어나는 깨달음을 수반한다. 나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의 불가능성, 자아의 망실 중에 나와 타자의 경계가 사라지는 체험, 탈아적(脫我的) 엑스타시, 희열의 절정에서 새로운 시선이 열리는 것.

부유하는삶-마추피추의 태양, Oil,Gel Stone,color spray on canvas, 65×50, 2012

예술은 자아의 경계를 해체하고 너와 하나가 되는 오래 전 인간의 경험을 근대 안에서 추적하는 중에 신비, 초현실, 표현, 충동과 같은 단어를 사용해 왔다. 현실 밖을 가리키는 언어들. 이향남 작가의 작업의 새로움이나 특이성은 우선 작업의 소재이자 토대인 '현실', 그녀가 굳건히 발을 딛고 서 있는 '땅'이 국경 밖 풍경, 인간 밖 장소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TV에서나 볼 수 있는, 어쩌면 자본이 만들어내는 시뮬라크라 중의 하나일 수도 있는 '오지'를 직접 방문하고 몸으로 겪어내는 중에 장소와 하나가 되었던 그녀는 이제 작업실 안에서 그러한 경험을 ‘다시’ 방문한다. 예술은 죽음을 기다리는 중에 삶을 한 번 더 상연하는 잠깐 동안의 연극 혹은 외출 같은 것이다. 순례자였던 작가는 예술가로서 두 번째 삶을 살아간다.

나미비아 붉은 사막의 아침, Oil,Gel Stone,color spray on canvas, 65×50, 2012

 

출처: 김달진 미술연구소